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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반미 코드' 속에 숨겨진 북한의 워싱턴 짝사랑

김정은 관람 공연에 '미키마우스' 한 때 "개혁·개방 나설 것" 관측 이모 고용숙 부부는 미국으로 망명 링컨리무진이 김일성·김정일 운구 미국 위협 부풀려 세습통치 정당화 반미 외치면서도 관계 정상화 갈망 워싱턴을 향한 북한 김정은의 질주가 시작됐다. '비핵화(denuclearization)' 깃발을 흔들며 미소 짓는 그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에 만나자"며 의기투합했다. 내달 판문점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상봉 루트를 거쳐 가는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 여정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미 본토 핵 불바다'를 겁박하던 북한 최고 지도자의 변신이다. 무엇이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대미 노선에 급변침을 가했을까. 70년 조선노동당 통치의 이데올로기 주축을 이룬 북한의 반미(反美) 코드를 해부해 본다.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캐릭터의 무대 등장에 이어 배경 화면엔 만화영화 백설공주와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영화 '록키'의 주제가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도 울려 퍼졌다. '이렇게 좋은 세상 우리에겐 부러움 없다'며 지상낙원을 외치던 구절은 '이렇게 좁은 세상'으로 바뀌어 불렸다. 서방 국가의 콘서트 무대를 방불케 하는 전자음악과 현란한 레이저 조명에 청중은 놀라워했다. 지난 2012년 7월 6일 평양의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장.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당시 직책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2시간 가까운 공연을 지켜본 뒤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월트 디즈니의 작품이 총출동한 무대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라이선스를 맺지 않은 해적 공연이긴 했지만 폐쇄적 독재 체제에다 반미 기치를 내걸어 온 북한으로선 파격이었다.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은 대담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집권 6개월을 갓 넘긴 청년 지도자(당시 28세)가 개혁.개방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에는 훈풍이 불어 닥쳤다. 핵과 미사일 도발에다 "남조선 등뼈를 부러트리라"는 호전적 언사까지 퍼부으며 전쟁위기를 부채질하던 김정은이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올리브 가지를 던진 때문이다. 대북특사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으로 가져간 메시지는 매력적이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지속돼야 한다는 점을 김정은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정 실장의 전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김정은이 북한을 '가난한 나라(poor country)'로 칭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적들이 100년을 제재한다고 해도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던 호기는 온데간데 없다. 집권 7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당 위원장은 반미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워왔다. 지난 한 해는 최악이었다.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마감단계를 언급한 김정은은 미국령 괌 타격 위협에 이어 본토를 타격할 '화성-15형'을 쏘아 올렸다. 9월엔 6차 핵 실험까지 감행했고 결국 11월 말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올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밝히면서도 미국과는 거리를 뒀다. 자신의 평양 집무실 책상 위에 '핵 단추'가 놓여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했다. 김정은의 전향적 대미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관영 매체들이 함구하고 재일 조총련 기관지까지 '조.미 정상회담은 미 전쟁소동에 종지부 찍는 담판'이란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것도 이런 관성 때문이다. 사실 반미는 북한 체제의 생존 이데올로기 그 자체였다. 일본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김일성 무장투쟁 성과로 치환시키는 데 성공한 북한은 6.25 남침 전쟁에도 손을 댔다. '민족해방 전쟁'으로 묘사해 승전을 주장한 뒤 "한 세기에 두 제국주의(미.일)를 타승(打勝)한 위인"으로 우상화한 것이다. 북한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장난감 총으로 미국 대통령과 성조기를 쏘는 유희를 강요받고 미국을 승냥이로 묘사한 TV 만화영화에 익숙해진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 2400만 북한 주민들은 연일 반미 군중대회에 동원돼 언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북한군의 전차와 방사포 등에 각인된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수인 미제국주의를 소멸하자'는 구호는 그 결정판이다. 반미 이데올로기는 3대세습의 취약점을 감추고 폭압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도 유용했다. 미제의 침략에 맞서 자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수령 독재와 유일 영도'가 작동했다.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집착은 미국에 대한 과장된 '피포위 의식 (siege mentality)'의 발현이다. 모든 것에 군(軍)을 앞세우는 이른바 선군정치도 마찬가지다. 궁핍한 삶은 미국의 대북제재와 봉쇄정책 때문인 것처럼 학습됐다. 이런 반미 캠페인을 통치에 써먹은 건 김정은도 예외가 아니다. 2014년 황해남도 신천박물관을 찾은 김정은은 '미제 살인귀'라 운운하며 "적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이라고 말했다. 신천 참극은 6.25 전쟁 중 좌우대립이 원인이 됐다는 걸 우리 진보 학자.매체도 검증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미제에 의한 3만5000여 주민 학살 현장'으로 날조.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반미 코스프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의 집무실엔 애플 컴퓨터가 놓여있고 즐겨 타는 차량 목록엔 미국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포함됐다. 김정은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로 묘사한 유일한 외국인은 전미프로농구협회(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다. 그토록 반미를 외치던 김일성과 김정일이 장례식 운구차로 왜 미국 포드사의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을 사용했는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집권 후 탈북자 단속에 심혈을 기울여온 김정은에게 있어 아킬레스건은 이모 고용숙(2004년 사망한 생모 고용희의 동생)이다. 어린 시절 김정은을 직접 챙겨주기도 했던 고용숙이 남편과 함께 망명한 안식처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북한 제2자연과학원 소속 기자로 활동하다 탈북한 김길선 씨는 "북한 핵심 고위층 사이에서는 최후의 순간 미국으로 망명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있다"며 "이는 김정은과 그 일가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불구대천으로 증오하면서도 워싱턴을 갈망한다는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청년 시절 해외유학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최고다. 수령님의 존함이 새겨진 김일성종합대에 다니겠다"고 거절했다는 게 북한 전언이다. 그런 김정일도 김정은을 포함한 3남1녀를 스위스에서 조기유학 시켰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라는 취지였을 게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을 유학지로 택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권력 승계자로 삼은 막내 아들에게 귀띔해 준 후계수업 최고의 비책은 '미국과 친구하기'였을지 모른다.

2018-03-14

폼페이오 발탁 속내 '북한 단단히 준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스스로 "나와 항상 같은 주파수"라고 표현하며 무한 신뢰를 보인 마이크 폼페이오(사진)를 신임 국무장관에 기용한 것은 오는 5월 북·미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외교라인 수뇌부의 극적인 재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적 이벤트가 돼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어난 것"이라며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서로 연계돼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을 향해 "우리는 진용을 재편해 진지하게 담판에 나선다. 그쪽(북한)도 단단히 준비하고 결과물을 가져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분석이다. 지금까지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주도해 온 폼페이오를 이제는 회담 '타결'을 주도하는 주역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북한에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까지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러셀 아시아소사이어티 선임연구원은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북한체제는 정보기관 수장인 CIA국장의 역할을 존중하기 때문에 (CIA출신인) 폼페이오가 향후 대북협상에서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더 타임스는 "트럼프가 폼페이오를 발탁한 배경에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뤄진 이란과의 핵 합의를 최대한 고수하려는 틸러슨 장관에 비해 합의의 대폭 수정을 주장하는 폼페이오의 강경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며 "트럼프는 이란 핵 협상을 대폭 뜯어고치는 것이 김정은과의 회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북한 측에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 합의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폼페이오의 후임 CIA국장에 폼페이오와 호흡을 맞춰 온 '몰고문 전력'의 30년 베테랑 지나 해스펠을 앉힌 것도 의미가 있다. 백악관 따로, 국무부 따로 놀던 대북 정책을 맥매스터(국가안보보좌관)-폼페이오(국무부 장관)-해스펠(CIA 국장)의 강성 3각 편대로 재편성하면서 '정상회담 후'까지 염두에 둔 것이란 지적이다. 언론들은 폼페이오가 과거 김정은 정권의 축출까지 시사했던 경력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하원의원이던 2016년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음파 및 전자, 방사선 등을 이용한 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고 CIA국장에 기용된 후인 지난해 7월에는 "가장 위험한 문제는 이 무기(핵 무기)들을 통제할 권한을 가진 인물에 있다"며 "북한 주민들 또한 그(김정은)가 없어지는 것을 원할 것"이라며 김정은 축출을 시사하기도 했다. WP는 "외교(북미 정상회담)가 실패하면 액션(군사행동)을 취하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메시지가 바로 폼페이오의 기용"이라고 해석했다. 김현기 특파원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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